145 OFFICE(145 오피스) | 홍연수 디렉터
일상을 연주하는 조용한 관종의
소리없는 뮤직 페스티벌
2024년 8월 6일 화요일
나무 맛 가득한 연남동의 한 비건 레스토랑에서 까맣고 긴 생머리에 큰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인상적인 145office의 홍연수 대표를 만났다. 예쁜데 엉뚱하고 친절한데 말 안 듣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브랜드 이름이 상당히 독특하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실 정말 별 의미 없다. 숫자로 시작하는 네이밍을 하고 싶었고, 그냥 145라는 숫자에 꽂혔는데.. 숫자를 세로로 나열하면 획 하나로 연결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그 뒤에 뭔가 이질적인 단어를 찾다가 그게 오피스가 되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재밌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 것 같은가?
어.. 천방.. 청개구리. 주변에서는 착하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기는 하는데, 친해지면 짱구 같다고도 하고. 엄마는 남의 말 좀 들으라고 하신다. 호기심이 되게 많고 원하는 건 꼭 해야 되는 게 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가 심할 때 한남동 쇼룸을 계약해버렸다.(웃음)
어떤 꼬마였나?
꼬맹이 때도 사실 옷을 제일 좋아했다. 취미도 네일아트 같은 거였다. 엄마랑 같이 김포에서 서울까지 나와서, 이대나 신촌에서 매니큐어를 한 아름 사가서 칠하고 꾸미고..
어머니가 치장에 적극 도움을 주셨나?
엄마는 지금 요식업 사업을 하시지만 원래는 패션 쪽을 엄청 하고 싶어 하셨다. 일본 유학까지 허락을 받으셨는데 결혼 때문에 못 가셨다더라. 그래서 지금 브랜드 사업도 응원을 많이 해주신다. 어릴 때부터 반에서 어떤 친구가 나팔바지를 입고 오면, 막 나는 잠이 안 오고 진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그러면 엄마랑 같이 빨간색 펄이 들어간 나팔바지를 찾아서 사 입고 가면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다.' 할 정도로 조용한 관종이었다. 그럴 때 엄마도 같이 좋아해 주셨다.(웃음)
브랜드의 추구미가 있다면?
유행은 최대한 배제하고 지조를 지키려 한다. 전체적으로 빈티지 무드에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같은 반항기도 숨어있다. 뭔가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뮤직 페스티벌 같은 바이브다. 보디라인이나 비율이 예뻐 보이는, 페미닌하면서 은은한 노출을 추구한다. 중요한 약속에 갈 때 생각나는 옷이면 좋겠다.
개인적인 추구미도 궁금하다.
아무튼 뻔한 건 안 좋아한다. 플라워 패턴 원피스를 입어도 구두를 신거나 하면 좀 느끼한 것 같아서 싫다. 거기에 캡 모자나 운동화를 매치해서 너무 여성적으로 빠지지 않게 좀 잡아주는 요소를 넣는 걸 추구한다. 뭔가 반전되는?.
스트레스 해소나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인프피 답게.. 침대에 누워서 영화 보기?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데, A24라는 배급사 작품들을 특히 좋아한다. 원픽 영화는.. 블루 재스민. 그거 말곤 음악 듣거나, 고양이가 벌레 잡는 거 찍거나 같이 놀아주는 게 다인 집순이다.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최대 고민은?
내가 회사를 안 다녀봐서, 돌아가는 시스템적인 부분을 잘 모른다. 지금이 딱 브랜드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은데, 그 허들을 넘으려면 좀 장사 머리가 있고 돈 계산도 잘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그런 부분이 제일 고민이다. 브랜드 론칭 초반부터 해외 팝업 같은 기회들도 많았는데, 준비에 진이 다 빠지고 이후에 그 발판을 잘 활용하거나 사업적 성장으로 연결시키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사업하길 잘 했다고 느낄 때는?
길에서 우리 옷을 보거나.. 그냥 좋아해 주실 때? 너무 뿌듯하다. 가끔 긴 DM이나 손 편지를 받기도 했는데, 그게 너무너무 힘이 난다. 나 어릴 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물심양면 도와줬던 언니도 생각나면서 막 더 잘 해주고 싶다.
어쩐지 우리에게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받은 게 많아서 나도 최대한 잘 도와주고 싶다. 거의 엄마만큼, 가장 고맙다고 여기는 디자이너 언니가 있다. 내가 뭐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쿨하게 '따라와.' 하고 택시를 태워서는 시장에서 원단 고르는 법부터 공장 가서 어떻게 하는지 다 알려주고, '애기들인데 좀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소개해 주는 진짜 진짜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옷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브랜드까지 탄생했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하고 큰 의미여서 인생의 다짐을 했었다. '나한테 뭘 물어본 사람이 있으면 난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 (천사 대물림, 은혜 갚는 청개구리라는 반응)
모교에 가서 강의도 한다고 들었다(ft. 이대 나온 여자)
1년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너무 즐겁다. 내가 학생일 땐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막막했기 때문에 최대한 세세하게, 작지 쓰는 법부터 공장은 어떻게 뚫는지 알려주고, 필요하면 아는 공장도 다 연결해 준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 해주고 싶다. 고민 있으면 그냥 연락하라고 한다.
브랜드의 10년 뒤는 어떨까?
지금은 코어 팬들 위주로 사주시다 보니 대중적인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어쨌든 들으면 알 만한 브랜드,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입점이 많이 되어있는 브랜드면 좋지 않을까. (집요하게 매출 목표를 묻는다.) 100억 정도 하면 엄청 좋을 것 같다.(웃음)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 감사하는 삶이 행복한 삶인 것 같은데.. 스멀스멀 욕심이 올라와서 어렵다.(웃음)
브랜드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생각보다 외롭다.(찐 F 모먼트에 일동 감탄) 뭔가 되게 꿈에 차서 시작했을 때 좀 놀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안 하면 아무것도 안되고 내가 움직여야지만 결과가 나오는 현타? 또 아무리 좋은 직원을 만나고 한다 해도 나랑 같은 마음일 수는 없는데 그걸 이끌어가야 된다는 것 자체가 되게 외롭다. 마냥 꿈에 부풀어서 막 '내가 이거 하면 멋있겠지.' 이랬는데. 가끔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누구를 같이 욕하더라도 그런 소속감이라는 게 있고, 팀이 같이 합심해서 같이 결과를 내고.. 그런 게 없어서 생각보다 되게 외롭더라.